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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아담스 자신을 돕기 위해 누군가를 돕는 것

by 쏭박스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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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아담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이 영화의 주인공 '패치 아담스'의 원래 이름은 '헌터 아담스'입니다. 영화 첫 장면의 독백 이후 등장하는 헌터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고, 블러 처리한 듯 흐리기만 합니다. 아무 의욕도 의지도 없는 사람의 표정입니다. 헌터는 길을 잃었습니다. 다행인 건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길을 잃은 사실도 모른 채 가던 방향으로 열심히 계속 전진하는 것이야말로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반면, 길을 잃었음을 인식하면 바른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면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가고자 하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헌터는 자신이 지금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욕실 선반을 열자 약병이 가득합니다. 아마 그 안에는 자신을 해치는 약도 있었을 것입니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펼쳐지는 흐린 색감의 하늘, 느릿한 음악, 표정 없는 헌터의 얼굴은 그가 매우 부정적인 상황에 놓였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이 마냥 암울하지만은 않습니다.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면서 폭풍 속에 있다는 것을 헌터가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폭풍 속에 있는 것과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병은 몸 안에서는 매우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위가 고장 나서 딱딱하게 굳었는데 본인이 소화도 잘되고 건강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이보다 심각한 상황은 없습니다. 

헌터는 당장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해결책을 찾습니다. 자살을 선택했다가 미수로 그친 후, 스스로는 거센 눈 폭풍을 피할 수 없어서 몸을 숨기며 비가 그칠때까지 있을 가장 적당한 곳을 찾았습니다. 바로 정신병원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헌터는 정신병원에서 '고치다'는 의미의 '패치'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그는 정신병원을 나와 의대에 입학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윽고 패치가 의대에 입학했을 때, 첫 훈화 시간에 학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의대 교수진은 너희의 인간성을 혹독하고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훈련을 통해 더 나은 존재, 즉 의사로 만들 것이다." 모든 의대 입학생들이 박수를 칩니다. 패치를 제외한 모두가 감동한 표정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 학장과 그곳에 있는 의대생들이 의사란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영화 마지막의 위원회 제소 장면과 연결됩니다. 패치는 위원회를 향해 항변하던 중 뒤돌아서 참석한 의대생들을 향해 말합니다. 의사는 권위를 위한 직업이 아니며, 그런 권위 의식에 빠지지 말고 환자의 마음까지 위로하는 '사람의 마음'을 가진 진정한 의사가 되라고 말입니다.

패치는 의대에서 새로 사귄 친구 트루먼과 의사가 되려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패치는 사람들을 돕고 그들과 연결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트루먼은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발달하는가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아직 의대 신입생인 패치와 트루먼은 환자와 접촉하기 위해 3학년에 되어야 환자를 만날 수 있다는 학칙을 깨고 몰래 흰 가운을 입은 채 회진 일행에 합류합니다. 회진하는 의사들의 동선 편의에 맞게 배치된 병상은 환자에게는 마치 공개된 장소에 놓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누워 있는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많은 시선들이 편안할 리 없습니다. 그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반면 패치는 병원을 돌아다니고 환자들을 만나 소통하고 장난치고 대화를 나눕니다. 불안한 마음을 만지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패치에게 환자는 자신과 동등한 존재이고 사람이며 자기 자신입니다. 패치가 자신을 보듯 환자를 본다는 말은, 이제는 패치가 과거와 달리 스스로를 귀하게 보고 존중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스스로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환자를 향한 마음도 그와 같을 수 없기에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무엇을 직면해야 하나

305호 병실에 들어가는 간호사는 곤욕을 치릅니다. 병실의 주인인 빌이 소변용기를 집어던지거나 물건을 던지는 바람에 혼비백산해서 병실 바깥으로 서둘러 나오곤 합니다. 빌은 췌장암 말기 환자입니다. 극심한 통증을 잊기 위해 모르핀을 맞고 있지만, 진통의 효과가 크지 않아 늘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 병실에 패치가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다가 멱살이 잡혀 도망쳐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패치가 다시 그의 병실을 찾았습니다. 온통 흰 옷을 입고 천사 날개를 단 채로 말입니다. 죽음을 코 앞에 둔 빌의 앞에 패치는 천사 복장을 하고 나타나 죽음을 뜻하는 단어와 관용구를 읊습니다. 처음에는 빌도 어이가 없어서 간호사를 부르고 삿대질을 합니다. 그러던 빌이 "이 세상에서 체크아웃하다"라는 말로 패치의 말을 받습니다. 빌의 그다음 말은 "천국으로 떠남"입니다. 죽음을 직면하는 순간입니다. 분노로 생을 보내던 빌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습니다. 

패치가 빌을 도울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밑바닥을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심연 속 어두운 모습을 마주하고 올라왔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진짜 원하는 삶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빌이 정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남은 생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남은 날동안 화만 내는 것이 아니라 웃고 즐기며 행복한 순간들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꼭 직면해야 하지만 외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직면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이 핑크빛이 아닌 경우 두려울 수도 있고,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직면을 통해 심연에서 수면으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외면을 통해 얻었던 가짜 위안들은 우리를 잠시 속이지만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영혼이 진심으로 바르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직면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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