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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늙는다는 것

by 쏭박스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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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즈 오브 실스

누구도 그냥 늙지 않는다

이 영화는 늙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의 치열한 투쟁 이야기입니다. '나'는 물론 주인공 마리아입니다. 화려한 전성기에서 막 내려온 중년의 여배우 마리아는 젊은 시절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연극에서 '시그리드'역을 맡아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말로야 스네이크>는 성공한 여성 사업가 헬레나와 그녀의 젊은 여비서 시그리드 사이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배신을 다룬 작품입니다. 영화의 1부에서 <말로야 스네이크, 후편>의 출연 제의를 받은 마리아는 일단 출연을 거부하고 갈등에 빠집니다. 그녀가 맡을 역이 시그리드가 아니라 헬레나였기 때문입니다. 클라우스라는 재능 있는 젊은 연출가가 제안했음에도 그녀는 이 역할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시그리드에, 자신의 인생을 꽃피우게 해 주었던 그 열정적인 젊은 주인공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세 명의 시그리드와 마리아

마리아는 결국 헬레나 역을 수락합니다. 영화의 2부는 마리아가 대본 연습을 위해 실스마리아의 별장에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곳은 고인이 된 극작가 빌렘이 <말로야 스네이크>를 구상하고 집필했던 장소로, 스위스의 아름다운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젊은 여비서 발렌틴은 그녀를 수행하는 동시에 그녀의 대본 연습을 돕습니다. 바로, 마리아와 발렌틴 사이의 갈등입니다. 각각 헬레나와 시그리드 역을 맡아 대본 연습을 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연극 속 대사를 주고받는 것인지, 실제 감정을 분출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아슬아슬하게 이어집니다. 아울러, 마리아가 헬레나 역을 고심할 때부터 현실을 직시하라고 충고했던 발렌틴은 대본 연습 내내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냉정한 조언의 말을 되풀이합니다. 그런 발렌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리아는 갖은 변덕과 신경질로 그녀를 괴롭히고, 결국 발렌틴은 마리아를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립니다.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의 마지막에서 헬레나가 사라진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트레킹 도중 홀연히 자취를 감춘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들에 영화 후반부터 등장하는 조앤과 마리아 사이의 갈등이 더해집니다. 할리우드의 스캔들 메이커이나 신인 여배우인 조앤은 처음에는 마리아에게 커다란 존경을 표시하나, 막상 극이 올라갈 무렵에는 냉정하게 마리아의 역할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녀 역시 시그리드 역을 통해 자신의 명성을 높일 속셈만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화 내내 마리아는 '세 명의 시그리드'와 갈등하고 투쟁합니다. 첫 번째 시그리드는 젊은 여비서 발렌틴이고, 두 번째 시그리드는 신인 여배우 조앤이며, 세 번째 시그리드는 20년 전 시그리드 혹은 시그리드 역을 맡았던 젊은 날의 그녀 자신입니다. 이 셋은 모두 젊은 여성들이고 마리아는 그들 모두를 질시하면서도 부러워합니다.

마리아는 이 세 명의 젊은 자아들에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들을 붙잡아두려 하지만, 끝내 모두 멀어지고 맙니다. 

황홀한 월경의 유희

이 영화에서는 '연극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 서로 침투하고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공연을 올리기 전부터, 그러니까 대사를 외우고 연기를 연습할 때부터, 이미 연극의 시간은 시작되어 현실의 시간을 뒤흔들고 지배해갑니다. 현실의 시간은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연극의 시간에 맞서고 그 압박을 견뎌내면서 서서히 그 모습을 되찾아갑니다. 현실에 던져진 자아는 한없이 나약하지만 폭풍우처럼 휘몰아쳐 오는 연극적 자아의 엄습을 견디면서 더 단단해지고 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삶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 혹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교묘히 흐려집니다. 갑작스러운 암전 이후 새롭게 시작하는 여화 2부는 어쩌면 주인공 마리아가 꾸는 '꿈'일 수도 있습니다. 2부의 첫 장면에서 그녀는 눈을 감고 있다가 곧 뜨지만, 그것은 꿈의 세계에서의 눈 뜸, 즉 꿈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2부에서의 발렌틴은 상상 속의 존재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발렌틴은 혼돈과 절망에 빠진 마리아가 필요로 했던 상상 속 존재입니다. 그녀 곁에서 그녀를 붙잡아주고 일으켜줄 부재 하지만 현존하는 일종의 '환영'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인생의 과도기에 찾아오는 먹구름 같은 시간

영화의 말미에서 그녀는 젊음을 떠나보내고 확실하게 늙음의 길로 들어서지만, 그럼으로써 자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되찾을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고통과 혼란의 시기를 겪었지만 마침내 젊은 날의 그림자들로부터 불리되고, 그로부터 잃어버렸던 정신의 자유를 되찾은 것입니다. 아이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야 비로소 성인이 되는 것처럼, 어른도 젊은 날의 그림자들로부터 분리되어야 비로소 '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말로야 스네이크'는 바로 그와 같은 고통의 기간, 폭풍우처럼 몰려드는 혼돈의 시기를 나타내는 상징 같습니다. 마리아는 그 먹구름같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마침내 젊음의 끝을 지나 늙음의 문턱으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흥미로운 장면 하나를 삽입합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무명의 한 젊은 감독이 등장하는데, 그는 <말로야 스네이크, 후편>의 첫 공연이 올라가기 직전 분장실로 마리아를 찾아와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넵니다. 자신의 영화 주인공에 그녀를 캐스팅하고 싶으며 주인공은 나이가 없는 동시에 모든 나이대를 대변하는, 즉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자신은 조앤 같은 배우와 빠르게 퍼지는 스캔들이 있는 이 시대가 싫다는 것. 그 순간, 마리아는 이 시대에도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사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은 아니지만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서 나름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마지막에 이르라, 늙는다는 것이 단순히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이대를 포괄하는 존재,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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