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이 시작되는 곳
추수 감사절 전날 저녁, 집에 오는 길에 리 앤은 터벅터벅 걷고 있는 마이클 오어를 보게 됩니다. 추운 날씨에 방금 코인빨래방에서 세탁하고 제대로 건조하지 않아, 젖은 반소매 티를 입고 걷고 있는 마이클이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리 앤은 마이클이 자신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알 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어려운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그녀는 잘 곳이 없어 체육관으로 향하는 마이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마이클의 내면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 역시 리 앤이었습니다. 덩치 큰 흑인 청소년인 마이클을 데리고 집에 와서 잠을 재운 다음 날 아침, 리 앤은 혹여나 무엇이 없어지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며 마이클이 자고 있던 1층 거실로 내려옵니다. 리 앤의 걱정이 무색하게 마이클이 잠들었던 거실 소파 위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침구가 놓여 있습니다. 곧 식사시간이 되었고, 가족들은 추수 감사절 음식을 각자의 접시에 먹을 만큼 덜어서 텔레비전 앞 소파에 앉습니다. 마이클은 접시에 음식을 덜어서 혼자 식탁에 앉아 조용히 먹기 시작합니다. 그때 리 앤의 마음속 잠금장치가 풀립니다. 리 앤은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텔레비전을 끄고 식탁으로 온 가족을 부릅니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 잡고 기도한 후 함께 식사합니다. 마이클에게 잠자리를 정리하는 것,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예절이었습니다. 잠자리를 허락해준 사람에게 그리고 식사를 준비해준 이에게 향하는 의식하지 않은 기본적인 마이클의 습관. 어쩌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는 그 작은 행동에서 리 앤은 마이클의 바른 심성을 알아보았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을 리 앤 가족의 추수감사절이 조금 더 따뜻해졌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황소 페르디난드
리 앤 가족과 마이클이 서점을 들렀던 날, 집에 돌아온 리 앤은 마이클과 SJ에게 그림책 <꽃을 좋아하는 소 페리디난드>를 읽어주었습니다. 막내인 SJ는 아직 어리지만 마이클은 고등학생입니다.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마이클의 말을 들은 리 앤이 침대에 앉아서 그림책을 펼칩니다. 그림책을 읽는 리 앤의 옆에 SJ와 함께 비스듬히 누운 마이클은 덩치가 큰 어린아이 같습니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는 그림책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의 실사판 같습니다. 마이클과 함께 지내며 리 앤은 마이클이 '황소 페르디난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투우를 위해 길러지고 훈련되는 사납고 덩치 큰 황소들 사이에서 유독 꽃을 좋아하는 평화주의자 페르디난드.
의지와 선택
다운타운의 덩치 큰 흑인 남자아이 마이클을 향한 시선에는 흔한 편견이 담겨 있습니다. '난폭하고 불량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합법적으로 과격해도 되는 미식축구 훈련에서조차 누군가가 자신 때문에 다칠까 봐 힘을 사용하지 않고 조심합니다. 자신의 거구가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이클이 자란 다운타운은 폭력, 마약, 총이 손 닿는 곳 가까이에 있습니다. 마이클의 어머니는 마약 중독에 빠졌고 보호당국은 아이들을 어머니로부터 분리했습니다. 마이클은 위탁가정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이클은 세간의 시선을 비웃듯 바른 심성을 가지고 폭력과 분쟁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로 자랍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기란 쉽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것만 아니었어도'라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엔 불공평한 것 투성입니다. 어쩌면 황소 페르디난드 주위에도 꽃을 좋아하는 황소가 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싸우라고 종용받고, 주위를 둘러봐도 치고받고 싸우는 소뿐이니 결국 그 흐름에 편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황소로 태어나 주위에 싸우는 소뿐이어도 꽃을 좋아하면 꽃 가까이에서 향기를 맡은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황소 페르디난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용기 내지 않은 대가
마이클이 마지막 에세이를 쓰기 전, 가정교사인 수 선생님과 글감을 고르고 있습니다.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경기병 여단의 돌격>은 어떠냐고 말하자, 듣고 있던 션이 시를 읊기 시작합니다. 마이클이 '6백명 중 단 1명도 포기나 항복을 생각하지 않았을까?'라고 쓸 때 마이클이 한 무리를 지나가는 장면이 오버랩되니다. 그 무리 중 한 명이 마이클의 친구 데이비드입니다. 마이클은 멈추지 않고 그들을 지나쳐서 자신의 길을 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나간 마이클의 뒷모습을 봅니다.
데이비드는 성적 미달로 대학 풋볼팀에서 떨어져 양아치 무리에 합류했습니다. 그가 만약 용기를 내어 무리에서 나오고 성적을 향상싴녀 대학팀 풋볼 선수로 계속 활동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데이비드는 영화 말미에 리 앤이 읽는 신문기사 속 갱단의 총에 맞아 죽은 인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힘들었던 과거를 극복한 풋볼 선수로 등장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경기병대 병사들처럼 앞으로 진격했습니다.
데이비드가 이 길이 자신이 원하던 길이 아님을 알았다는 걸 암시하는 영화 속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데이비드가 등장하는 몇 안 되는 모든 장면에서 그의 표정이 늘 슬프고 후회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풋볼 선수가 된 마이클을 바라보는 데이비드의 눈빛이 클로즈업되었을 때입니다. 후회, 질투, 부러움, 좌절감 등이 뒤섞인 묘한 시선이었습니다.
변환자로의 삶
리 앤 가족이 머무는 동네와는 공기 색깔마저 다르게 느껴지는 곳, 대낮에도 외부인은 진입하기 꺼리는 그 곳에서그곳에서 마이클이 살았습니다. 그가 살던 동네 허트 빌리지에 다녀온 후 리 앤이 마이클에게 어떻게 그곳에서 견딜 수 있었냐고 묻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마이클은 눈을 감는 선택을 했습니다. 마이클의 엄마는 아이들을 낳기만 하고 돌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마이클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녀 자신은 중독되어 마약을 끊을 수 없었지만 마이클은 그런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 후로 마이클은 나쁜 일에 노출되면 눈을 감았습니다. 엄마가 마이클에게 준 선물입니다.
신뢰를 믿음으로 갚지 않는 사례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마이클이 향한 리앤 가족의 마음에 신뢰로 반응한 것은 마이클 자신입니다. 똑같은 상황에 놓여도 인간은 각자 다른 선택을 합니다. 때로는 주위에 휘몰려 원하지 않는 길을 걷기도 합니다. 그러니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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