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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벨리에 역할에 눌리지 않은 온전한 내 인생

by 쏭박스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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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벨리에

따로 또 같이, 가족의 의미

영화의 원작 소설인 <수화, 소리, 사랑해!>는 침묵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에 한 발씩 담그고 두 세계를 오가며 소통하는 모든 코다(CODA,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세계에서 외국어와도 같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농인 부모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기까지 겪어야 했을 코다들의 상처와 수많은 흔들림을 꾹꾹 눌러쓴 경험담입니다. 코다들은 집을 떠나는 순간 소리의 세계에 머물다가 집으로 들어오며 침묵의 세계로 진입합니다. 두 개의 언어로 두 개의 문화를 오가며 두 개의 세상을 살아갑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부모와 온전히 한 세상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코다, 즉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인 폴라는 부모의 마음과 상관없이 자신이 부모를 보호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모도 스스로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폴라를 많이 의지합니다. 영화 중반, 폴라의 부모님은 시장 출마 신청을 한 후 이미 당선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습니다. 아빠는 시장으로 엄마는 시장 부인으로서의 소양을 쌓는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쿠키 영상에 아빠가 시장에 당선되어 시정 활동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폴라의 가족들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악가고 있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에 대해 말합니다. 가족이 무엇인지, 함께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함꼐 성장하는지 하나씩 짚어나갑니다. 가족이니깐 '무조건 같이'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한 관계로 함께 나아갑니다. 그 과정에 눈물이 있지만 벨리에 가족은 결국 웃습니다. 

장애가 아니라 정체성으로의 청각장애

폴라의 아빠는 자신에게 청각 장애가 있는 것이 청인의 관점으로는 청각 '장애'이지만, 그것이 자신에게는 장애가 아니라 정체성, 즉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였던 베로니크 풀랭은 불러도 듣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소리를 속삭여줄 수 없는 부모를 멀리서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다가, 나중에 자신도 부모를 따라 농인을 위한 연극협회에서 일하며 농인들을 대상으로 공연합니다. 그때 들리지 않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이나 문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성대를 울려서 말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는 농인이 '장애인'이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청인이 '장애인'이 됩니다. 스스로 걸림돌이 아닌 것은 이미 장애라는 단어를 넘어섭니다. 장애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장애, 누군가는 정체성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정체성이자 하나의 문화라고 인정하면 신체 기관의 의학적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닐 수 있습니다. 나아가는 길을 막지 못하는 것은 이미 장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꿈, 나의 목소리

영화 포스터 속 폴라의 모습은 도입부에 나옵니다. 폴라는 매일 아침 통학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듣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폴라의 표정이 행복해보입니다. 폴라에게는 하루 중 청인으로서의 자신에게 죄책감 없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농인인 부모님과 동생을 사랑하는 폴라가 가족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마의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장치가 음악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수동적인 즐거움입니다. 폴라가 자신에게 허락하는 소극적인 쾌락입니다. 그랬던 폴라가 첫눈에 반한 가브리엘을 따라 생각지도 않았던 합창부에 들어가면서 폴라의 인생에 대반전이 시작됩니다. 폴라의 가족에게도 변화의 파도가 몰려옵니다. 

폐 안의 공기가 성대를 비벼서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의지의 표현이자 지금껏 간신히 누르고 있던 폴라의 진심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가족의 역할을 담당하며 살아온 폴라에게 목소리는 자신의 인생이자 꿈 그 자체입니다. 가족이 경영하는 농장 밖으로 자신만 분리되어 꿈을 펼치러 나간다는 생각을 폴라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가복을 배신하는 것만 같습니다. 

폴라는 스스로를 부모님의 돌봄을 받는 어린 자녀가 아닌, 부모님을 돌보는 역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폴라 스스로가 느끼는 무게입니다. 폴라는 파리에 있는 음악학교 입학 오디션 참가 여부를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의 인생이니 자신이 결정하겠다며 오디션을 보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때 토마송 선생님이 폴라에게 정곡을 찌르는 말을 다시 한번 건넵니다. '네 인생인 거 확실하냐'고. 자신도 그 구덩이를 잘 안다고. 같은 묘지에 있으니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

미셸 사루두의 <Je Vole>을 부르는 폴라. 폴라의 마음인듯한 가사 '도망치는게 아니에요, 날아오르는 거에요'를 진심을 담아 수어로 동시에 노래하는 폴라를 보며 부모님의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이제 품 안의 자식이 아니구나. 떠나보내야 하는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도망가는게 아니라 날아오르는 거라는 노래의 가사가 영상을 뚫고 나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폴라는 안전하고 편안한 세계에 있습니다. 가족과의 갈등이 없는 이 편안한 상태가 좋으면서도 뭔가 공허하고 허전하기도 합니다. 가슴 뛰고 벅차오르는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데미안>의 문장처럼, 알을 깨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선택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때론 괴롭습니다. 

폴라는 알에서 나왔습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한 세계를 파괴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폴라가 더이상 품안에 안겨있던 아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폴라의 부모님도 알에서 함께 나왔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미라클 벨리에', 벨리에 가족의 기적입니다. 부모님을 떠나 비상하는, 날아오르는 폴라의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에 날아오르는 폴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낼 준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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